철도안에서

2021. 4. 24. 21:00 from 잡생각

출근길의 철도안 풍경은 뭔가 독특하다.

고속철도는 몇일간 추출이 겹쳐 쓴맛이 겹칠대로 겹친 별다방의 자동머신에서 추출한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맛이랄까.분명 가격은 고급스럽고 모두가 선호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재밌는 점은 좌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다.좌석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언가의 일정에 의해 일시적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인지라 대부분 목적이 있는 얼굴을 하고 있다.

 

반면 좌석이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정기권이나 입석, 자유석칸에 탑승하는 사람들은 표정이 죽어 말라미틀어진 멸치마냥 퀭 하다. 아니 자유석 칸이나 열차 중간의 간이석 사람들이 앉아있는 자리 근처에선 그냥 "날 집에 보내주오" 라는 아우라가 넘쳐 흐르고, 동지애를 느낀다. 아 비애여...

 

특히나, 종착역에 닿을 즈음에는 좌석이 없는 사람들... 마치 가짜 봉사가 종착역에 다달아 눈뜨는 것 마냥 갑자기 눈을 뜨는데 그 표정들을 보고 있자면, 죽었던 멸치가 좀비가 되어서 살아 일어나는 것만 같다. 왜냐하면 좀비들은 하나같이 출구와 가장 가까운 위치로 알아서 천천히 그들만의 룰을 지키며 걸어가기 때문이다.

 

반면 좌석을 점유한 사람들은 올곳에 왔구나 라는 표정으로 바뀌는데, 이 표정들은 참으로 미묘복잡하게 차이가 나서, 오늘은 꼭 - 라는 결의에 가득찬 표정이 있는 반면, 오늘은 좋은 결과가 있을까? 라는 조금은 두려운 표정이 있기도 하고, 제발 오늘은 좋은 결과가 나오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에 가득찬 표정이 있기도 하다.

 

간혹 나에게 철도로 출퇴근하면 힘들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 왕왕 있는데 사람들의 표정을 슬쩍슬쩍 눈에 담아 머리속에서 그들의 사연을 내 맘대로 추측해보는 것만으로도, 철도안은 언제나 재밌다. 물론, 묻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해졌다고 둘러대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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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괭 :